대동방여전도 전국지도 
 
김정호가 제작한 22첩의 《대동여지도》와 내용이나 구성이 거의 동일한 채색필사본 지도다. 다만 앞의 지도 21첩에 들어있던 남해안과 제주도 사이의 추자도 부분을 22첩의 제주도와 함께 수록하여 21첩으로 구성하였다. 《대동여지도》의 필사본 대부분이 산줄기와 물줄기를 거의 동일하게 표현한 반면 본 지도첩에서는 《동여도》를 비롯한 일반적인 채색 지도처럼 표현하였다. 그리고 중요 정보를 체계화시킨 地圖標에 나열된 각종 기호의 모양이 《대동여지도》와 거의 동일하지만 채색을 넣어 구분해 준 차이도 있다. 또한 지도의 이름인 ‘大東方輿全圖’가 신헌이 김백원(즉 김정호)에게 위촉하여 23권으로 완성시켰다는 ‘大東方輿圖’ 와 비슷하기도 하다.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추어 본 지도첩이 《대동여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만든 선행 지도로 추정하는 연구자도 있다. 그러나 내용적 측면에서 볼 때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대동여지도》의 제작 이후 필사했을 가능성도 있다. 첫째, 본 지도첩에 표시된 지명의 거의 100%가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반면 《대동여지도》에는 있지만 본 지도에는 없는 지명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둘째, 《대동여지도》에 ‘?’로 쓰인 글자 대부분이 본 지도첩에는 ‘竹’으로 기록되는 등 지명의 틀린 한자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셋째, 10리 간격의 도로 방점 표시에서 《대동여지도》와 《동여도》가 거의 동일한 반면 본 지도첩에는 다른 부분이 많다. 넷째, 《대동여지도》에 비해 윗첩과 아래첩 사이의 물줄기 연결 관계가 잘 맞지 않는 곳이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두 견해 중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앞으로 더 깊은 연구를 통해 규명될 필요가 있다. 《대동여지도》는 1861년의 연도가 적힌 초판본이 있으며, 1864년의 연도가 적힌 재간본에는 몇몇 부분에서 교정이 가해져 있다. 그리고 1861년의 연도가 적혀 있지만 초판본에서 몇몇 부분의 교정이 가해진 목판인쇄본도 발견되고 있다. 본 지도첩의 내용은 거의 교정이 가해지지 않은 1861년의 초판본에 가깝다. 다만 경상도의 경주와 울산 사이에 표시된 東津(古縣)이 초판본에서 교정이 가해진 상태로 표시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이기봉)